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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2 ★ 방랑시인 김삿갓의 방랑벽도 멈추게 했던 화순적벽(노루목적벽, 보산적벽) 탐방 등 ~~

청이당 2015. 3. 22. 20:47

1. 탐방지 : 화순 이서적벽, 독수정(고려말 충신 전신민), 충민사(병자호란때 전상의 장군)

 

2. 탐방일시 : 2015년 3월 22일 09:30~11:30(화순 이서적벽)

 

                 ※ 맑으나, 미세먼지 & 옅은 황사 등으로 조망은 별로

 

3. 탐방코스 : 09:30 화순금호콘도 집결 출발~09:43 이서중학교 경유~10:10 전망대(포토존)~10:20 망향정 도착~

                  10:40 망향정 출발~11:00 이서중학교 경유~11:10 화순금호콘도~11:30 국보옛날두부 점심(남면 구산리)

                  ~12:10 식당 출발~12:30 독수정(전신민, 담양 남면 연천리)~13:05 충민사(전상의 장군 사당) 

                 

▼ 이서적벽(노루목적벽+보산적벽) & 옹성산 전경사진

 

  <사진 삭제>

 

 

 

 

 

 

 

 

 

▼ 화순적벽 4개소 위치 지도 ~~

   - 물염적벽(물염정), 창랑적벽, 보산적벽, 노루목적벽(장항적벽) ~

 

                  

★ 天下第一景 화순적벽 ★

화순적벽은

동복댐 상류에서부터 약 7km 구간에 형성된 절벽경관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복댐 상류에 있는

물염적벽, 창랑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일명 노루목 적벽) 등 4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다.

이중 노루목 적벽은 높이 90m 직각으로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화순 적벽이 예부터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던 곳으로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으로 유배 왔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보다 아름답다하여 적벽이라 명명하였다.


1574년 무등산을 돌아보고 유서석록이라는 기행문 속에 적벽을 기록으로 남긴 제봉 고경명 선생, 석천 임억령 선생은

이곳을 신선이 사는 곳 이라하여 적벽동천이라 명하였고,

하서 김인후 선생은 적벽시를 읊었고,

1777년(정조1년)에 화순 현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화순을 왔던 16살의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적벽에서 시를 읊음으로써 오래전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노래했던 천하 명승지이다.

 

또한 적벽의 수려한 경관에 반하여 전국을 떠돌던 방랑시인 김병연(일명 김삿갓)이

이곳을 수차례에 찾아와 적벽을 노래하다 인근의 구암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 (無等山高 松下在) /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구나 (赤壁江深 沙上流)’.

김삿갓으로 유명한 난고 김병연(1807∼1863)이

조부를 비난한 죄책감 때문에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며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유랑에 나선 때는 22세 무렵.

처자식을 남겨두고 강원도 영월을 떠나 ‘동가숙 서가식’하던 김삿갓은

34세 되던 1841년에 처음으로 전남 화순 땅을 밟았다.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인 무등산 장불재를 넘은 김삿갓은

눈앞에 펼쳐지는 화순적벽의 절경에 취해 걸음을 멈추었다.

삿갓을 살짝 들고 화순적벽을 응시하던 그는 괴나리봇짐에서 지필묵을 꺼내 짤막한 시 한 수를 지었다.

그때만 해도 김삿갓은 이곳에 뼈를 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4. 탐방개요

 

전남 화순군 창랑천(동복천,동복호)에는

적벽이란 명승이 4곳(창랑적벽,물염적벽,보산적벽,노루목적벽)이 있는데,

동복호 상류에 있는 물염적벽, 창랑적벽은 자주 가볼 수 있었던 곳이나,

 

옹성산아래 그림처럼 비추이고 있는 노루목적벽, 보산적벽은

광주시민의 상수원 보호를 위해 1986년부터 철망문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절경을 볼수없었던 아쉬움을 뒤로하였는데,

 

인터넷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한 자에 한하여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 3월 21일 부터 매주 수,토,일요일에 제한적으로 탐방을 허용하고 있어서

따스한 봄날 나들이를 겸하여 가족들과 함께 탐방할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날이었다.

 

화순적벽 투어 예약 http://tour.hwasun.go.kr/cmd

 

    1) 2015년 3월 21(토)~11.29(일)까지 매주 수,토,일요일 09:30, 13:00, 15:30에 한하여 개방하며,

 

    2) 탐방예정일 2주전 09시부터 인터넷(http://tour.hwasun.go.kr/cmd)에서만 예약 가능

        - 1인이 10석까지 예약가능하며, 1인(석)당 5000원 예약금 납입

 

    3) 투어버스(1~4호차) 탑승지 (09:30 출발 화순군 관광버스의 경우)

        - 09:30 화순금호콘도 주차장 탑승/출발

        - 09:40 구 이서중학교(규남박물관 건너편) 경유/탑승

 

 

★ 참고사진 ★

 

▼ 1970~80년대 동복호 담수 이전의 이서적벽(노루목적벽) ~~

 

 

 

 

 

 

 

 

 

 

 

 

 

 

 

▼ 만추의 화순 적벽 ~~ 

 

조선 10경으로 불릴 정도로

화순적벽장엄하게 파노라마처럼 둘러 처진 모습은 가히 경건함을 불러 일으켜 주는데 손색이 없다.

현재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는 노루목적벽(사진 뒤)과 보산적벽(사진 앞)의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5. 탐방사진

 

    ※ 적벽 입구의 광주광역시 상수도사업소 감시초소 철문에서 노루목적벽 앞 망향동산까지

       4.8km의 임도가 8부능선 쯤에 개설되어 있어서,

       매우 위험한 S커브 구간이 많아 관광버스로 이동하는데 매우 조심스러운 구간임.

 

 

 

 

 

 

 

▼ 전망대(포토존2)에서 바라본 보산적벽(앞)과 망향정, 옹성산 아래 노루목적벽(뒤) 모습 ~~ 

 

 

 

 

 

▼ 망향동산 입구 ~~ 

    - 노루목 적벽을 바라볼수있는 망향동산에서 20분의 짧은 탐방시간이 주어진다 ~

 

    - 가까이에 있는 송석정과 망미정은 탐방 불허 ~

 

▼ 수몰된 마을의 흔적인 대나무 숲 ~~ 

 

 

 

▼  '소'와 관련된 '천제단'이라는데...... 

    - 백제 635년 경 유마운의 딸 보안보살이

      적벽 건너편인 '학소봉'에 천제단을 둥글게 축조하여 천제를 올리고 한울님께 지속적으로 기도하면서

      학소봉 동남쪽에 보안사를 창건하였으며,

      보안사가 융성할 때에 100여명이 넘는 승려들의 수도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폐허가 된 보안사에서 출토된 부도탑이 국립광주박물관 광장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 적벽동천 ~~

   -  ‘석천 임억령’이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이름 지었다고......,

      ‘동천’이란 아름다운 산천이 둘러싸여 있어서 경치가 매우 뛰어난 곳을 말한다고......

 

 

 

▼ 망향정과 주변 모습 ~~

   - 광주시민의 식수난 해결을 위하여 고향터전을 떠나야 했던 15개마을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 주는 곳 ~

 

 

 

 

 

 

 

 

 

 

 

 

 

 

 

 

 

 

 

 

 

 

 

 

 

 

 

 

 

 

 

 

▼ 동복호 북쪽 조망 ~~ 

 

 

 

▼ 구 이서중학교 교정(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 ~~ 

 

 

 

 

 

▼ 남면 구산리 요양병원 앞에서 운행대기중인 광주 광천동~담양 남면 유둔재~구산리 간을 운행하는 225번 버스 ~~

 

 

▼ 담양 남면 구산리에 있는 식당 ~~

 

 

 

▼ 보쌈보다 청국장찌개 맛이 일품인 식당 ~~

 

 

 

▼ 담양 남면 소재지인 연천리 근방에 있는 '독수정'(고려말 충신 전신민)에 들러 ~~  

 

 

 

 

★ 독수정 참고자료 ★

 

< 독수정(獨守亭) 해설시연 자료 >

무등산사랑 환경대학 제35기 김봉섭

 

절의를 지킨 고려말 충신 전신민의 독수정

 

1) ‘독수정 무등산의 북동쪽 기슭 담양군 남면 산음(山陰)마을 어귀에 있는

  고려말 공민왕때의 충신 전신민(全新民)’이 세운 아담한 정자이다.

묘소 산음마을 뒷산 함충재 오르막 길 우측에 있으며,

신도비 독수정 아래에 세워져 있고,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중건한 것이다.

 

(원본크기로 볼려면 사진위에서 클릭) 

 

 

 

2) 전신민 호는 서은(瑞隱),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고려말 북도접무사(北道接撫

     使) 겸 병마원수(兵馬元帥)를 거쳐 병부상서(兵部尙書)로서 다난한 국사를 맡아  

     일해 왔으나,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선죽교에서 살해되는 것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산음마을에 내려와 독수정을 짓고 숨어 살았다고 전해진다.

 

 

3) 이성계가 조선 태조에 등극한 뒤 여러차례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두 나라를 섬기지 않는 다는 을 굳히며, ‘백이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냐(伯夷何人

 我何人)’하며, 그의 충절을 지켰다.

 

그리고, 송도(松都)하늘을 바라보며 북향재배하기 위하여 독수정을 북향으로 짓고,

아침이면 조복을 입고 곡배(哭拜)를 올렸다고 한다.

 

 

4) 이 정자를 ‘독수정’이라 한 것은 이백(李白)의 시 ‘백이숙제가 누구인가 홀로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가 굶어 죽었네(夷齊是何人 獨守西山餓)’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고 수양산으로 들어간 백이와 숙제의 고사처럼 두 나라를

섬기지 않고 절개를 지키겠다는 의지에서 정자 이름을 택한 것이다.

 

 

5) 한편, 고려 왕조가 무너진 뒤, 왕족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왕씨 성을 전(全), 전(田),

 옥(玉)씨 등으로 바꾸고 몸을 숨겼다고 전해지는데, 전신민도 그 가운데 한사람으로

 고려 왕족이었다 하여 이 근방에서는 전신민을 '왕판서부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6) 독수정 본래는 떼지붕이었으나, 1915년에 중건하면서 정면 3칸, 측면 3칸에

  중앙에 한 칸자리 방이 있는 팔작 지붕의 건물로, 13세손인 농은 전홍혁(全泓爀)

  등이 1891년(고종 28년) 중건하는 등 후손 들에 의해 중건, 중수되어 오다가,

 

  1971년에 전회종(全會鍾) 등이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재중수하여 1972년에 준공

  하였는데, 오래된 건물이 아니 어서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독수정 주변의

  원림 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61호 1982년 지정되었.

 

7) 계류가 흐르는 남쪽 언덕위에 정자를 짓고 후원에는 소나무를 심었으며, 앞에는

  대나무를 심어 수절을 다짐했다. 원림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소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등의 오래 된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앞뜰에는 자미나무, 매화

  나무,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등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정원조성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독수정 주변 누정(조선시대 대표적 가사문화권, 정자문화)

 

① 은거를 위한 정자 : 독수정, 풍암정, 소쇄원, 망미정, 물염정, 송강정

② 학문을 가르치기 위한 정자 : 풍암정, 죽림재, 학구당 등

③ 수려한 자연경관 감상 및 시문을 기르기 위한 정자 : 면앙정,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

 

 

 

▼ 독수정 앞에 있는 구한말에 어등산과 담양 남면 무동리 등에서 활동했던 의병전적비 ~~

 

 

 

▼ 또 다른 '전'씨 한 분(병자호란때 전상의 장군)의 유적지인 충민사 ~~

    -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전 통'이 5.18이후에 자신의 조상을 내세우기 위하여 웅장하게 건립한 것으로 잘못알고 있는 충민사~

       '전 통'은 완산 전씨요, 전상의 장군은 천안 전씨이며,

       '박 통'은 충장사, 포충사같은 무인들 사당건립을 노력했는데, '전 통'은 무인들 사당건립을 매우 꺼려했다고 한다~

   

    - 상당한 수령의 매화나무가 많아 매화향이 진동하고, 산수유꽃도 만개한 상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