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여유로 행복 찾아..'안전'은 숙제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제주올레에는 세계자연유산인 화산섬 제주가 빚어낸 아름다운 풍광이 있다.
해안 절경이 눈부신 주상절리대, 제주의 숲인 곶자왈, 화산체 오름 등이 코스마다 펼쳐진다.
제주올레는 이런 제주 자연의 매력을 한껏 살리도록 자연에 인위적으로 변형을 가하거나 중장비 등 기계를 동원하지 않고
길을 최대한 보전해가며 조성됐다.
`수봉로'와 `해병대길', `특전사숲길' 등은 이런 제주올레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수봉로는 7코스 속골 옆 공물해안에 난 길로 가파른 땅을 손수 다져 흙계단으로 만들었다.
8코스의 해병대길은 원래 중문해수욕장 해안을 지나 주상절리대와 울퉁불퉁한 갯바위로 막혔던 길이었다.
해병 91대대 장병 80여명과 해군 10여명이 자원해 무거운 갯바위를 하나씩 일일이 날라 돌들을 고르게 했다.
올레 13코스 특전사숲길도 중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특전사의 도움을 받아 순전히 인력으로만 숲길 군데군데에 길을 냈다.
그러나 제주올레가 15∼20km에 이르는 코스 하나를 개척하는 데 보조받는 예산은 9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중에 70%는 인쇄물 제작비로 나간다.
- 이처럼 `올레 정신'을 지키면서 비용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올레길에는 자원봉사자 300여명의 숨은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제주올레의 또 다른 `정신'은 `느리게 걷기'다. 제주올레 측은 `느림'과 `여유'를 통해서만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올레길에선 느리게 걸어야 만이 제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제주올레길을 만든 것은 속도에 치이고 일에 쫓겨 사는 사람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제주올레를 상징하는 `간세'가 게으름뱅이란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오게 됐다.
간세의 모양은 천천히 걷는 제주 조랑말을 형상화했다.
제주올레의 이런 `여유'와 `낭만', `치유' 등의 매력은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010년 5월 제주관광공사가 발표한 제주 관광객 대상 설문조사에서 올레 탐방객 중 51%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관광 패턴과 비교하면 여성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올레의 `여유'와 `낭만'이 여성들에게 선망되고 있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올레의 정신에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0일 제주올레를 탐방하다 실종됐던 여성의 시신 일부가 버려진 채 발견되면서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경찰조사결과, 올레코스가 지나는 마을의 한 남자가 올레길을 혼자 걷던 여성을 성폭행하려다가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 이에 인적이 드문 숲길이나 중산간 지역을 지나는 올레길 안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더욱이 걷기 열풍 속에 전국의 산야에 우후죽순처럼 개설되고 있는 도보여행길의 안전대책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올레 등 도보여행길에 폐쇄회로(CC) TV를 설치해야 한다", "숲길 등 인적이 드문 곳은 폐쇄해야 한다"는 등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주장이 커갔다.
이에 제주도와 제주지방경찰청, 제주올레 등은 현장 안전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안전대책들을 속속 마련했다.
그러면서 올레의 정신만은 가급적 훼손하지 않도록 안전대책이 세워졌다.
그 절충안이 부속섬 등을 포함한 제주올레 코스에 경찰 등 147명이 자원해 순찰에 나서는 `올레길 지킴이'다.
특히 올레 도보여행자 등 관광객이 위급 상황에 닥쳤을 때 단말기 버튼만 누르면 112 종합상황실에서 위치를 추적, 긴급 출동하는
`제주 여행 지킴이' 긴급 서비스가 개시됐다.
목걸이형 단말기는 제주공항과 제주항의 관광안내센터와 올레 종합안내소 등에 비치해 관광객들이 손쉽게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9일 올레길에서 30대 여성이 혼자 걷다가 흉기를 든 괴한에게 위협받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도보여행길의 안전에 다시금 숙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