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일대에 있는 무등산 규봉. |
ⓒ2003 최연종 |
무등산의 3대 석경(石景) 가운데 가장 빼어나다는 규봉(圭峯, 950m).
일찍이 규봉을 보지 않고 무등산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할 정도로 규봉은 무등산의 절경 중 가장 으뜸으로 친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아침부터 산행을 서둘렀다. 규봉은 화순 땅인 이서면 영평리 일대에 걸쳐 있다.
▲ 규봉과 어우러진 규봉암. |
ⓒ2003 최연종 |
영평리 2구 입구[이서초등학교 좌측]에서 무등산을 향해 난 도로를 타고 가면 규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길은 가파른 편이지만 다른 등산로에 비해 가장 빨리 규봉에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소나무 사이로 안양산이 가끔씩 얼굴을 내비칠 뿐 밋밋한 산행이 이어진다.
등산로 곳곳에 빛바랜 소나무 잎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인적이 드문 연유다.
1시간쯤 흘렀을까…. 조금 지루하다시피 한 산행에서 인기척이 여간 반갑지 않다.
연휴를 맞아 장불재를 넘어온 등산객들로 제법 북적거렸다.
▲ 규봉 입구에 있는 여래존석(좌). 관음존석(우). |
ⓒ2003 최연종 |
규봉 입구 왼편에는 곧게 뻗은 쌍둥이 돌기둥이 나란히 있어 눈길을 끈다.
여래존석과 미륵존석으로 주변에 있는 관음존석과 더불어 삼존석(三尊石)이라 불린다.
기둥 꼭대기에 작은 받침돌[관음존석이 아님]이 두 기둥을 잇고 있어 인상적이다.
원래는 이 삼존석을 규봉이라 불렀을 만큼 깊은 뜻이 숨어있는데
관찰사나 고을 현감이 돌기둥에 글을 새겨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
▲ 무등산 3대 석대의 하나인 광석대. |
ⓒ2003 최연종 |
미륵존석 옆에는 넓고 반반한 반석이 있다. 광석대(廣石臺)다.
마치 힘센 장사가 옮겨 놓은 듯한 반석은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몇 개의 바위 무리들이 반석과 어우러진 광석대는 입석대, 서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석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규봉에는 광석대 이외에 은신대, 풍혈대, 설법대 등 십대(十臺)가 있으며
광석대 뒤쪽에는 지진으로 인해 윗부분이 부러진 채 관음존석이 버티고 있다.
▲ 규봉암 뒤쪽에서 바라본 규봉. |
ⓒ2003 최연종 |
규봉은 자로 재듯 마름질한 돌기둥이 솟아 있어 입석대와 닮았지만 돌기둥의 폭이 큰 것이 특징.
마치 옥을 깎아 병풍처럼 둘러놓은 것 같은 선돌과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와
5월이 되면 갖가지 색깔의 옷을 입은 철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곳곳에 이름을 가진 석대가 있는 것도 규봉만의 볼거리다.
▲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규봉암. |
ⓒ2003 최연종 |
규봉 앞에는 규봉암(圭峯庵)이 자리하고 있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암자는 규봉이 두 팔을 벌려 감싸 안은 듯한 형국.
의상대사는 암자 뒤에 있는 바위틈에서 쉴 새 없이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이 곳에 절터를 잡았다.
이렇게 높은 곳에 암자를 세운 것도 충분한 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보조국사 지눌과 진각국사 혜심이 주변에 있는 삼존석과 십대에서 불도를 닦았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유서 깊은 사찰로, 비록 규모는 작지만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규봉사’라고 적고 있어
고려 후기에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규봉암은 1995년에 관음전을 새로 세웠고 최근에 부속건물이 지어졌다.
▲ 보조국사가 수도했다는 은신대. |
ⓒ2003 최연종 |
규봉에서 장불재쪽으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보조국사가 수도했다는 보조석굴이 있다.
이 석굴은 반반한 바위가 저절로 지붕을 만들자 여기에 기둥을 세우고 돌을 쌓아 작은 암자가 됐다.
규봉 십경 가운데 하나인 은신대(隱身臺)다.
도선국사는 은신대에 앉아서 조계산의 산세를 살펴 송광사 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 은신대 윗머리에 있는 문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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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대 윗머리에는 두개의 큰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으니 문바위다.
김덕령 장군이 이곳에서 활쏘기 등 무술을 연마하면서 동면 마산리(馬山里)에 있는 ‘살바위’까지
화살과 백마 중 누가 빨리 가는지 내기를 했다.
장군이 말을 타고 살바위에 도착해 화살이 없자 아끼던 백마의 목을 베고나니
그때서야 살바위에 화살이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말이 죽었다’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마살리(馬殺里)라 불렀는데
살(殺)자 흉하다고 해서 훗날 마산리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 문바위에서부터 기암괴석이 뻗어 내리며 규봉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후일 이곳에서 노산은 한 수의 시로 김덕령 장군과 백마의 한을 달래주었다 전한다.
덕령이 어디 갔나 백마야 어디 갔나
어허 덕령이 어디 갔나
백마 데리고 어디 갔나
오늘은 청궁 마살리로
말 달릴 이 없구나!]
▲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돌을 깔았다는 지공너덜. |
ⓒ2003 최연종 |
석굴 바로 옆에는 부서진 돌무더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인도 승려 지공대사(指空大師)가 이곳에서 좌선수도를 하며 법력으로 돌을 깔았다고 전해오는 지공너덜이다.
석공이 마치 규봉을 다듬고 난 뒤 부스러기처럼 생긴 이 돌 무리는 산마루에서 4km나 길게 뻗어 있다.
무등산에는 지공너덜 말고도 덕산너덜 등 네 개의 너덜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이 가운데 지공너덜이 가장 크고 웅장하다.
▲ 천연암벽에 '마애불'은 새긴 석불암. |
ⓒ2003 최연종 |
지공너덜에서 장불재쪽으로 몇 발자국 옮기다 보면 작은 암자가 나온다. 옛 석불암터다.
석불암은 빗장이 걸린 채 낯선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지만
약수터 위 돌담사이로 난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석불을 만날 수 있다.
석불암(石佛庵)은 한국전쟁때 사라지고 현재 건물은 최근에 지었으며 암자 뒤쪽에 석불이 있다.
석불은 천연 암벽에 마애불을 새긴 것으로 11C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 윗부분은 섬세하게 조각된데 반해 아랫부분은 엉성하는 등 대체적으로 투박한 편.
▲ 규봉암 왼편에 있는 규봉. |
ⓒ2003 최연종 |
고려 명종때 시인 김극기(金克己)는 규봉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라
올라와 보니 만상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아낸 듯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
명승을 밟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