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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12 영혼을 치유하는 한국의 명품길 24곳 - 『소울로드』

청이당 2012. 6. 12. 11:23

영혼을 치유하는 한국의 명품길 24곳 - 『소울로드』

12명의 소울 로더들의 ‘길 고백’기
한국의 아름다운 명품길을 소개합니다

 

그렇게 숙제 없는 방학을 제대로 누린 사람들 12명이 기록한 전국 각지의 도보 여행 길에 관한 이야기가『소울로드』청어람미디어)다. 춘천 봄내길, 강화 둘레길, 외씨버선길, 부산 해파랑길, 남해 바래길, 안면도 노을길, 북한산 둘레길, 소백산 자락길, 전주 마실길, 질마재길, 돈내코길 등등 그 이름의 소박한 울림부터 범상치 않다.

인생을 비유하는 말로 길처럼 적합한 것이 또 있을까. ‘인생길’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가 아닌가. 이렇게 삶의 비유이자 삶 그 자체로서의 길에서 더 나아가, 길은 세상 전체와 우주 만물의 보편적인 이치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도(道)라는 말이 바로 그것. 도 닦는다는 것은 길을 닦는다는 것이고, 도통(道通)했다는 것은 길을 제대로 훤히 안다는 뜻 아니겠는가. 삶이요 원리이자 철학인 길. 그런 길과 만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두 발로 길을 딛고 땀 흘려 걷는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를 답사 여행의 시대라 한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는 도보 여행의 시대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90년대 답사 여행의 발원지로 유홍준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 수 있다면 21세기 도보 여행의 출발점에 서명숙의 제주 올레길이 있다고 할까. 해외로는 스페인의 성지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사뭇 유행을 타기도 했다. 답사 여행이라 하면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방학숙제 느낌이 든다. 이에 비해 도보 여행이라고 하면 사람과 자연과 공동체에 대한 느낌을 한껏 누리기만 하면 된다는 느낌, 즉 숙제 없는 방학 느낌이 든다.

그렇게 숙제 없는 방학을 제대로 누린 사람들 12명이 기록한 전국 각지의 도보 여행 길에 관한 이야기가『소울로드』(청어람미디어)다. 춘천 봄내길, 강화 둘레길, 외씨버선길, 부산 해파랑길, 남해 바래길, 안면도 노을길, 북한산 둘레길, 소백산 자락길, 전주 마실길, 질마재길, 돈내코길 등등 그 이름의 소박한 울림부터 범상치 않다. 모두 24곳의 길이 소개되어 있는데 16곳 길을 산과 들, 바다, 숲, 마을, 섬 등으로 일종의 주제를 분류하여 소개하고, 나머지 8곳 길은 ‘아름다운 명품길’로 간략하게 소개했다.

글쓴이들이 여럿이기에 글마다 개성이 다르지만 대체로 담담한 고백체 에세이들이다. 글쓴이 대부분은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기에 좋은 의미에서 소박순진하고 솔직한 글들이 다수다. 또한 객관적인 지식정보를 담아내기보다는 글쓴이 개인의 체험과 느낌을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둔 글이 많다. ‘길 안내’가 아니라 ‘길 고백’인 셈. 물론 체험 과정을 서술하는 가운데 길 여정에 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으며, 각 글 말미에는 총길이와 소요시간, 주요 지점 등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어서 최소한의 안내 구실도 겸한다.

‘소리 없이 걷다가 먹먹한 가슴을 살며시 내려놓고 소리 없이 돌아가는 길. 쪽빛 물결에 푸르름을 더한 드넓은 하늘을 가슴에 안고 길을 걷다가 수평선 넘어 내려가는 감미로운 노을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길.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의 흔적들이 무던한 시간에 지워지고 다시 덧칠해지는 색(色)의 공간.’

백사장항에서 꽃지해변에 이르는 총 11킬로미터에 3시간이 걸리는 안면도 노을길에 관한 인상적인 소개다. 길지 않은 여정에 모래, 갯벌, 갯바위, 소나무숲, 산길 등 다양한 길을 품고 있다는 것이 이 길의 가장 큰 특징. 여정의 마지막 즈음에서 노을과 만나는 것이 이 길의 백미라 하겠지만, 노을과 만나고 싶다는 집착도 놓아버리게 만드는 것이 길의 위대함이라 할까.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인연이 되면 아름다운 노을을 만날 수 있겠지만 자연은 결코 반복되지 않으니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결코 같은 날을 단 하루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책에 소개된 길 가운데 필자가 꼭 가보고 싶어진 길 하나. 수덕사에서 서산 마애삼존불에 이르는 26킬로미터의 내포문화숲길이다. 26킬로미터 거리에 이틀이 소요된다 하니 중간에 역사, 문화, 자연 등에 걸쳐 보고 느낄 것이 워낙 많은 덕분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어깨에 짊어진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준비가 된다면 비소로 내포 가야산 숲길로 들어설 자격이 주어진다’는데, 아직 그런 자격을 얻기에 먼 것만 같은 내 형편이다. 자유로워야 길을 떠날 수 있겠지만, 길을 떠나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핑계를 대어볼 밖에.

이 책의 미덕은 읽는 사람을 길로 유혹한다는 점, 딱 거기까지다. 그런데 그 유혹이 결코 만만치 아니하다. 몇 번 국도 타고 가다가 어디에 주차하며 어디에서 뭘 먹고 뭘 꼭 봐야 하고 하는 따위의 ‘작전지시서’가 없기에 오히려 유혹이 강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눈이 머는 것이 먼저다. 사랑을 어떻게 이룰지,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하며 머리 굴리는 건 그 다음 일이다. 길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일 터. 생각해보면 걷기 여행의 풍요는 최소한의 작전과 최대한의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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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로드 신정일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길은 철저히 개인의 사유 영역이다. 그래서 10인 10색의 길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길에서 사유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다양한 물음을 만들며 더욱 깊고 넓고 진하게 삶의 성찰을 다듬는 데 제 몫의 역할을 한다. 『소울로드』는 가급적 길에 대한 직관적ㆍ철학적ㆍ인문학적ㆍ감성적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문예인보다는 길을 체험적으로 느끼며 그 고통과 행복, 여유를 제 몸으로 풀어내는 소울로더들에게 길에서 직접 느꼈던 다양한 사유와 감성의 조각들을 펼쳐보이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