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위에 올라섰다, 봄물은 더디게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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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불현듯 철쭉이 군락을 이룬 너른 땅이 펼쳐진다. 5월, 마당바위 위에서 화려한 철쭉의 군무를 감상할지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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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산 자연휴양림에서 임도를 따라 팔각정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나는 빨치산 비트. 저 큰 바위를 당시에는 어떻게 옮겼을까. | |
1949년 2월, 14연대 반란군을 이끌었던 김지회·홍순석(14연대 중대장)은 ‘지리산 순회 투쟁’을 펼쳤다. 남원 산내면에 든 3월 하순께 김지회를 비롯한 일부 간부는 술도가에 묵었다. 주인은 이들에게 술을 내줬고 만취한 김지회·홍순석은 그날 밤 군경에 사살됐다. 빨치산은 크게 흔들렸다.
“워매, 겁나게 들어와삐네!”
광주에서 돌고 돌아 화순 노치리에 든 택시기사의 이 말. 그 속에는 큰길에서 크게 벗어난 백아산(810m)의 한적함이 배어 있었다.
“김, 홍준씨지라?” 아는 척하는 휴양림 직원 너머 컴퓨터 모니터에는 예약자 이름이 홀로 띄어져 있었다. 너른 휴양림의 고요함이 묻어 나왔다.
백아산을 에둘러 가는 임도를 걸었다. 회차 코스를 지나 팔각정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중간에 빨치산 비트가 있다. 큰 바위들이 입구를 틀어막고 있고 바위로 트(아지트의 준말)를 둘렀으며 이엉을 얹었다. 이엉 한쪽 귀퉁이는 무너져 내린 채 사위어 가는 하루의 햇볕을 통과시켰다. 이 트 뒤, 임도 너머에도 네모나게 돌무더기를 놓은 곳이 몇 군데 보인다. 겨우 흔적만 남긴 계단을 올라 이 트 저 트 둘러봤다. 스윽스윽, 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빤히 쳐다보다 도망간다. 나도 놀라 바삐 숙소로 돌아왔다.
연락선·보급선 차츰차츰 끊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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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군락지에 있는 용머리 약수터. 약수터 앞에서 단아한 나무와 푹신한 흙이 길손을 마중한다. | |
‘후다닥, 후다닥…’. 서생원과 밤을 보냈다. 그들은 천장에서 마라톤을 했고 나는 그들의 걸음을 셌다. 갑자기 그들은 100m 스프린터가 됐고 나는 그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불면의 밤이 지났다. 어제 잠깐 밟았던 임도 코스를 버리고 바로 능선에 붙었다. 이어 바윗길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망을 바라며 바위에 과감히 올라섰다. 이후 한 시간 넘게 바위를 껴안고 짚고, 바위에 매달리고 몸을 비비기를 반복했다. 바람은 떼로 다니며 아슬아슬한 바위 위에서 몸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이 바위들이 하얀 거위처럼 생겼다 하여 백아(白鵝)산이다. 석회암으로 이뤄진, 뾰족뾰족한 바위들은 금방이라도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듯하다. 백아산은 동쪽에 통명·백운, 그 위에 동악, 서쪽에 무등, 남쪽에 모후·조계, 북쪽에 지리 등 전남의 산들이 두루 보이는 독특한 자리 잡음과 21세기에도 접근하기 어려운 동떨어짐을 지녀 전남 빨치산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소설 『태백산맥』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산들과의 사이에 논밭들이 지형을 따라 어느 곳에서는 널찍하게 펼쳐지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좁장하게 줄어들기도 하면서, 그 농토의 넓이에 합당하도록 크고 작은 마을을 이루어 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백아산 지구는, 가운데 담배통 터는 자리가 솟은 놋재떨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불면이 부른 고통은 금세 사라지고 다리에 힘이 실린다. 붕괴 위험으로 출입이 통제된 팔각정 전망대를 훌쩍 지나쳤다. 저만치 백아산 정상이 보인다.
소총으로 비행기를 떨어뜨렸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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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바위 철계단을 지나는 등산객들. 나무에 걸린 표지기가 무성하다. | |
문바위 삼거리를 지나 백아산 정상에 섰다. 오종종 늘어선 떨기나무들은 몸을 한껏 낮췄다. 바람은 나무와 도란도란, 바위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홀로 오셨나 봐예?”
“네, 두 분이 사이좋게 오시네요.”
“하하, 그래 보입니껴!”
이 산은 전라도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경상도 소속 산악회에서도 다녀간 흔적이 많다. 부산·진주·창원…. 그들의 표지기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옆으로 빠지는 길도 없어 표지기만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천불바위 계단에서 다시 경상도 팀을 만났다. 갑자기 평지가 나타난다. 철쭉 군락지다. 이 군락지 속 용머리 약수터에서 식사를 했다. 호박죽을 배낭에서 꺼냈다. 어느 날 빨치산 한 명이 총상을 입고 민가에 들었다. 낮에는 군경이 단속하고 밤에는 빨치산이 휘젓는 상황에서 집주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호박죽을 내줬다. 원래 부상이 심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말이 말을 낳았는지 알 길 없지만 총상이 금세 아물었단다. 해서 호박죽은 빨치산에 영험한 음식으로 통했다. 철계단을 밟고 마당바위에 올랐다. 마당 넓은 집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잘 정리된 잔디밭 위에 묘 한 기가 봉긋 솟아 있다. 바위는 ‘갈기’를 세워 철쭉 군락지 쪽으로 흩뜨린다. 그 갈기 위에 올라섰다. 여느 때 같으면 봄은 한껏 물이 올랐을 텐데 올해는 참 굼뜨다. 더디 왔다가 급히 가려나 보다. 어느 봄 깊은 날, 살랑 바람 따라 제 몸 흔드는 철쭉의 군무를 눈에 넣고 올 만하겠다.
글·사진=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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